책소개
≪중국 편지≫는 상하이에서 이주를 준비하는 사샤와 몬트리올로 이주한 위안과 다리가 편지를 주고받는 서간체 형식의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는 중국에서 약혼한 사샤와 위안의 사랑과 몬트리올에 이주한 후 만들어지는 위안과 다리의 사랑을 대비적으로 그리고 있는데, 이들의 사랑은 이성 간의 사랑보다는 이주자와 모국의 관계를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위안은 모국인 중국과 이주해 온 나라 캐나다에 대해 어머니의 사랑과 애인의 사랑으로 비유한다. 방랑자적 기질을 타고났지만 조국에 소속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위안은 몬트리올에 이주한 후 마치 신생아처럼 살고 있다고 사샤에게 편지를 쓴다. 유배의 행복감과 고독감 사이에 있는 위안에게 사샤가 결별의 편지를 보내자 그는 절대적인 절망감에 빠진다. 위안에게 사샤는 자신의 과거, 젊음, 가치, 그리고 모국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위안에게 연의 줄은 바로 모국과 연결해 주는 탯줄을 상징하며 사샤와의 관계는 자신을 낳아 준 어머니의 사랑과 같은 것이다. 위안은 또 다른 사랑, 서구식의 사랑을 경험하게 되는데 이는 합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다리와의 ‘부도덕한’ 사랑이다.
다리는 자신이 서구적 가치와 코드에 따라 자유분방하게 살고 있다고 여겼지만, 위안과 사귀면서 신성한 중국의 약혼을 범하고 있다는 죄의식을 떨쳐 내지 못한다. 성관계를 요구하는 위안을 거부하면서 다리는 중국의 가치들이 얼마나 깊숙이 자신의 내면을 억압하고 있는지 깨닫는다. 그래서 그녀는 무거운 짐에서 해방되려고 다시 새로운 곳을 향해 떠난다.
≪중국 편지≫의 두 여인, 사샤, 다리는 동양적 가치관과 서양적 가치관의 내면적 혼재 때문에 두 세계에서 방황하는 인물들이다. 이 두 여인, 사샤와 다리 사이를 방황하는 남자, 위안 역시 사샤가 상징하는 중국의 전통문화와 다리가 상징하는 서양 문화 사이에서 혼란과 변화를 겪는 인물이다. 이러한 인물들은 결국 두 개의 언어와 두 개의 문화 사이에서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잉천의 문학적 상상력의 산물이다.
200자평
국경과 경계를 초월해 보편적 인간 존재에 대해 성찰한 작가 잉천의 대표작이다. 사샤와 위안, 위안과 다리의 엇갈린 사랑을 편지글에 담아 낸 소설 ≪중국 편지≫에서는 퀘벡 문학의 새로운 갈래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이주 문학의 독특한 정서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지은이
1961년 중국 상하이에서 태어난 잉천은 스물여덟 살 때인 1989년 몬트리올로 이주한 이후 1992년 맥길대학교 문학창작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하며 ≪물의 기억≫을 출간했다. 잉천은 1993년 ≪중국 편지≫를 발표한 이후 퀘벡 문학계에서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1995년 ≪배은망덕≫으로 널리 알려졌다. 1995년에는 프랑스의 페미나문학상, 그리고 퀘벡-파리문학상을 수상했고, 1996년에는 여성 잡지 ≪엘(Elle)≫에서 퀘벡여성독자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은 영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세르비아어 등으로 번역되었고, 중국어로는 잉천 자신이 직접 번역, 출간했다. 이후 그녀는 퀘벡의 대표적인 작가로 꼽힐 정도로 대중성과 문학성을 확보했다. 그녀는 1992년 처녀작 출판 이후 지금까지 아홉 편의 소설과 한 권의 에세이집을 발표하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잉천의 소설은 중국과 퀘벡 사이에서 상이한 언어와 문화의 괴리로 인해 경험한 정체성에 대한 불안감과 상실감, 중국에서나 퀘벡에서나 주변인, 소수자라는 사회적이며 존재론적 유배의 감정을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 문체로 표현한다.
옮긴이
이인숙은 한양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의 엑상프로방스에 있는 프로방스대학에서 알베르 카뮈에 대한 연구로 불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한양대학교 프랑스언어문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몬트리올대학의 교환교수 및 방문교수로 2년간 캐나다 몬트리올에 있으면서 퀘벡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프랑스의 쇠유출판사에서 서정인의 ≪달궁≫(Talgung, Seuil, 2001)과 이창동의 ≪녹천에는 똥이 많다≫(Nokcheon, Seuil, 2005)를 불어로 번역, 출간했다. 서정인의 ≪달궁≫ 번역으로 2002년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한국어 번역서로는 ≪처절한 정원≫(문학세계사, 2001)이 있고, 저서로는 ≪한국 문학 외국어 번역≫(민음사, 공저), ≪프랑스 사회와 문화≫(만남, 공저)가 있다.
차례
중국 편지(1∼55)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그러나 나는 뿌리를 좋아하지 않아. 뿌리들은 이것이나 저것이나 할 거 없이 모두 추하고 고집스럽고, 편견의 근원이며 또한 헛되고 파괴적이며 고통스러운 갈등을 불러일으켜.